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(문단 편집) == 구단 소개 == || '''{{{+3 {{{#000000 All of my Life}}} }}}''' || [[KBL]]의 前 프로농구단으로 [[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]]의 전신이다. 연고지는 [[인천광역시]], 홈 구장은 부평구 삼산동에 위치한 [[인천삼산월드체육관]]. 인천 연고 농구단의 역사는 질곡의 역사를 지닌 [[SSG 랜더스|연고 야구단]]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. 최초의 뿌리는 1996년 [[고양 오리온 오리온스|동양제과 실업 농구단]]과 비슷한 시점에 창단된 [[대우증권]] 실업 농구단 시절부터다. 당시 [[연세대학교]]와 [[명지대학교]]를 연고 학교로 하여 창단했는데 이때 영입한 창단 멤버들이 무려 '''[[우지원]], [[김훈(농구)|김훈]]''', [[석주일]], [[조성훈(농구인)|조성훈]], [[정재헌(농구)|정재헌]] 등 [[농구대잔치]] 시절 대학농구의 최고 인기스타들이었다. 그 덕에 실업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[[오빠부대]]를 몰고 다니는 부동의 인기 구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. 창단 감독은 전 연세대학교 농구부 총감독이었던 [[최종규(농구)|최종규]] 감독이 맡았고 최종규의 후배였던 [[유재학]]이 코치를 맡았다. 1997년 초 [[한국프로농구]]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면서 수도권 빅마켓으로 꼽히던 [[인천광역시]]를[* KBL 출범 당시에는 서울 연고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인천이 수도권 최대의 빅마켓으로 꼽혔다. 지방에서는 [[전희철]], [[김병철(농구)|김병철]] 등 고려대학교 졸업생들이 포진한 [[고양 오리온 오리온스|동양 오리온스]]의 [[대구광역시]], 실업 최강팀의 면모를 그대로 이어받은 [[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|기아 엔터프라이즈]]의 [[부산광역시]] 등이 빅마켓이었다. 수도권에는 [[안양 KGC인삼공사|SBS 스타즈]]가 있는 [[경기도]] [[안양시]]도 있었지만 당시 안양시내에 홈경기를 치를 체육관이 없어 서울과 의정부 등을 전전해야 했고 안양의 도시 규모 자체가 인천보다 월등히 적다.] 대우증권 프로농구단의 연고지로 결정하고[* 실업 시절에는 [[전국체육대회]]나 농구 코리안리그 등에 출전할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[[부산광역시]]를 연고로 한 적이 있다. 물론 명목상의 지역 대표팀이었을 뿐 부산에서 대우의 홈경기를 치른 적은 없다.] '''인천 대우증권 제우스'''라는 이름으로 KBL 원년리그에 참가했는데 [[안양 KGC인삼공사|안양 SBS 스타즈]]와 함께 KBL 사상 첫 번째 경기를 치르는 주인공이 됐다. 대우증권이 KBL 첫 경기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[[KBO 리그]]의 원년 개막전 매치업과 비슷한 이유에서였다. 리그의 붐업이 필요했던 상황인 만큼 [[MBC 청룡|전국 네트워크를 보유한 방송사를 모기업으로 둔 팀]]과 [[삼성 라이온즈|최고의 인기 선수들을 보유한 스타군단]]을 맞붙여놔야 했다. 1982년 MBC와 삼성이 그랬던 것처럼 SBS와 대우증권은 KBL 출범 경기의 매치업으로 제격이었다. 물론 이 경기에서 대우증권은 경기 막판에 저지른 개그농구로 인해 1점차로 SBS에 패하며 질곡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. 문제는 인천을 연고로 하는 팀이었음에도 KBL 두 번째 시즌 개막 시점인 1997년 11월부터 [[인천삼산월드체육관]]이 문을 연 2006년 11월까지 무려 9년간이나 인천의 바로 옆동네인 [[경기도]] [[부천시]]에서 홈경기를 치러야 했다는 점이다. 창단 원년 당시 홈구장은 현재 [[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]]의 홈구장으로 쓰이는 [[인천도원체육관]]이었는데 매우 심각하게 낙후된 시설을 갖춰 경기를 치르는 선수나 관람하는 팬들 모두 불편함을 호소했다. 마침 1997년 부천에 [[부천실내체육관|삐까뻔쩍한 새 체육관]]이 문을 열면서 임시방편으로 홈구장을 옮겼고 이때부터 9년간 인천-부천 공동 연고구단으로 운영됐다. 물론 부천지역 팬들은 "부천에서 홈경기를 치르는데 왜 인천팀 소리를 들어야 하느냐. 부천이 인천의 들러리냐" 등의 비판을 했지만[* 실제로 부천시 측에서 아예 인천 연고권을 포기하고 부천에 정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인천이라는 빅마켓을 포기하자니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때마침 부천과 매우 가까운 인천 삼산동에 [[인천삼산월드체육관|새 체육관]]이 지어지는 만큼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. 그때까지는 인천-부천 체제를 유지했는데 인천에서 홈경기를 홍보할 때는 '인천-부천시민과 함께 하는 농구단'이라는 수식어를 달았고 부천에서 홈경기를 홍보할 때는 '부천-인천시민과 함께 하는 농구단'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.] 인천의 시장 규모가 워낙 컸고 실제 인천에서 부천으로 넘어와서 관람하는 홈팬의 규모가 상당했기에 인천 연고권을 유지하면서 부천 홈경기를 치러야 했다.[* 물론 마지막 해인 2021년에도 부천지역의 팬덤이 상당했다. 삼산월드체육관의 입지상 체육관에서 직선거리로 400m만 동쪽으로 벗어나면 행정구역상 부천시 지역이다. 특히 이 지역은 [[상동신도시]], [[중동신도시]]와 연결되는 지역이고 [[삼산체육관역]]을 통해 인천과 부천지역 곳곳에서 접근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.] KBL 출범 당시에는 대우증권 산하의 농구단으로 운영되다 1998년 구단 운영법인 (주)대우제우스 설립 후 독립적으로 운영됐고 1999년에 [[대우자동차]]로 법인이 합병됐다. 그러나 얼마 못 가 [[대우그룹]]이 망하면서 1999년 가을 구단이 [[신세기통신]]으로 넘어가면서 '''인천 신세기 빅스'''로 새 간판을 달았다. 그 후 [[SK그룹]]이 신세기통신을 인수하고 '''인천 SK 빅스'''라는 이름으로 구단이 운영됐고, 한 회사가 두 팀의 지분을 가질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[* 축구를 제외하면 어느 종목이든 이런 조항이 들어있다.] 2003년 [[전자랜드]]에 매각되어 '''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'''라는 이름으로 농구단을 운영했다. 이후 고려제강의 상징 동물인 [[코끼리]]를 팀명에 넣은 '''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'''로 구단명을 바꾸게 된다. 전자랜드는 그동안 부족한 모기업 재정 상황이 있었음에도[* 2020년에 구단 운영 포기 선언을 하기 이전에 몇 차례에 걸쳐 구단 운영 자금난에 의한 팀 해체설이 돌아 농구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.] 불구 끈기와 투지있는 농구를 바탕으로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. 그러나 [[코로나19]]로 인한 경기 악화로 2020-2021시즌을 앞두고 구단 운영 포기 의사를 밝혔고 결국 2021년 5월 농구단이 [[한국가스공사]]로 매각되었다.[* 공기업은 금융권과 마찬가지로 프로스포츠팀 운영이 불가능하지만 리그 규모가 작은 농구와 배구는 별도 법인 설립을 의무화한 야구나 축구와 달리 별도 법인을 만들 필요가 없으므로 편법적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참여를 용인하고 있다. V-리그의 [[수원 한국전력 빅스톰|'''한국전력공사''' 남자배구단]], [[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|'''한국도로공사''' 여자배구단]]이 대표적 사례. KBL의 [[안양 KGC인삼공사]]와 V-리그 [[대전 KGC인삼공사]]도 모기업 이름이 공사(公社)지만 민영화된 회사다.] 자칫 25년의 역사를 품은 농구단이 아예 사라질 뻔 했으나 다행히 구단의 명맥은 이어갈 수 있게 됐다. 그러나 한국가스공사의 본사가 있는 [[대구광역시]]로 연고이전하며[* 원래는 [[경기도]] [[성남시]]에 본사가 있었으나 [[노무현 정부]] 시절부터 진행된 공공기관 지방 분산 이전 계획에 따라 본사가 대구로 이전됐다.] 인천 연고 농구단의 역사는 종지부가 찍혔다.[* 이미 V-리그에 유사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. [[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|도로공사 배구단]]은 2005년 [[경상북도]] [[구미시]]를 연고지로 삼으며 프로팀 전환을 이뤘으나 2010년 당시 도로공사 본사가 있던 [[경기도]] [[성남시]]로 연고지를 옮겼다. 그러다 2015년 도공 본사가 [[경상북도]] [[김천시]]로 이전하자 배구단의 연고지도 김천에 터를 잡았다. 다만 [[수원 한국전력 빅스톰]]의 경우 [[한국전력공사]] 본사가 [[전남]] [[나주]]로 이전 했음에도 팀은 여전히 [[수원시|수원]]에 남았다.] 이후 역사는 [[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]] 문서 참조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